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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Trade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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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TPP, 다자 무역질서를 유지할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2025-09-23 16:27

김두식 외국인투자 옴부즈만 변호사                                                                                2025년 9월 23일


 


      2025년 들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와 일방주의의 심화로 ‘미국을 제외한 국제질서’(world minus one)를 추구해야 한다는 담론이 힘을 얻고 있다.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 무역질서가 붕괴 위기에 처한 가운데, 이를 유지할 하나의 대안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CPTPP 가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과연 CPTPP가 다자 무역질서를 살릴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CPTPP는 고도의 무역자유화와 시장개방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하려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농산물시장을 과감히 개방할 각오를 해야 한다. CPTPP 절차도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지금 가입을 희망하는 많은 국가들이 줄을 서고 있다. 그러나 기존 CPTPP 회원국들은 가입 희망국을 개별 심사하여 만장일치로 가입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대기 중인 국가들의 가입이 언제 성사될지 알 수 없다. 

유일하게 CPTPP에 신규 가입한 영국은 2021년 2월 가입신청을 한 후 3년 10개월만인 작년 12월 가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문제 인식하에, 여기서는 CPTPP 가입절차를 중심으로 CPTPP 가입과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서론

 

리셴룽(Lee Hsien Loong) 전 싱가폴 총리는 2025년 7월에 열린 싱가폴 경제학회 연례 만찬 모임에서 “미국 없는 세계” (World minus One)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바 있다. 미국이 미국우선주의 정책으로 다자주의 무역질서에서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국가들이 미국 없이 다자질서를 유지하자는 담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슬로건 아래 펼쳐지는 일방적 상호관세 부과 등 미국우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거의 존재감을 상실했고, 규칙에 기반을 둔 다자가 무역질서는 무대 뒤로 사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실상 미국의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 간 합종연횡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 8월 말 중국 톈진에서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는 20여개국 정상과 10개 국제기구 수장들이 참석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SCO 행사로, 미국의 적대국들 및 글로벌 사우스 간의 연대 움직임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특히 미국이 지난 25년간 자신의 우방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해온 인도의 모디 총리가 미국의 관세 폭탄에 저항하면서 SCO에 참석, 앙숙 중국과 화해한 것은 미국이 촉발한 세계질서의 재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통상외교 정책은 거래적(transactional)이다. 그가 부과한 상호관세와 이를 낮추기 위한 협상조건은 중국 등 적대국보다 동맹과 우방에 더 가혹하다. 이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들 간에도 상호 연대와 협력을 모색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안주해오던 유럽은 방위비 증액과 자체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호주, 영국 등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 동맹국들 간 연대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역사적 앙금이 가시지 않은 한일 간에도 협력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이런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현재 12개국에 불과한 CPTPP회원국을 확대하여 미국 없는 다자 무역질서를 유지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CPTPP를 확대하는 데에는 CPTPP에 내재된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CPTPP에 신규로 가입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또한 신규 가입국에게 높은 수준의 가입요건을 요구하고 있고, 개별 신청국별로 맞춤형 가입 협상을 진행하고 만장일치로 가입을 승인하는 방식을 취하여 가입 절차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중국이 가입의사를 밝히는 등 가입을 희망한 국가도 다양하여 신규 회원국 영입 승인에 정치적, 지정학적 고려가 개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CPTPP 회원국 확대에 많은 난관이 예상되고 있다. 비록 영국이 가입 신청 후 3년 10개월만인 2024년 12월 CPTPP에 가입하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현재 추가로 7개국이 가입 신청을 진행 중이며, 가입 의사를 표명한 국가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CPTPP 회원국들이 이러한 다수 가입 희망국들의 가입절차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가입 승인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CPTPP의 회원국 확대에 따르는 문제를 중심으로 CPTPP가 과연 다자 무역질서를 유지할 플랫폼이 될 수 있을지를 살펴보기로 한다.[1]

CPTPP의 성립과정 및 가입조항

 

일반적으로 지역무역협정(FTA)는 신규 회원국의 가입을 예정하지 않는다. FTA는 처음부터 서로를 잘 아는 협정당사국들 간에서만 관세인하나 시장접근 등의 혜택을 부여할 것을 전제로 협상하고 체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CPTPP는 ‘포괄적 · 진보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이라는 명칭에 내포되어 있듯이 처음부터 회원국들의 점진적 확대를 예정하고 있다. 

 

CPTPP 원회원국은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등 11개국이다. 작년 12월에, 영국이 2018년 말 CPTPP 발효 이후 최초로 신규 가입한 회원국이 됐다. 현재 추가로 CPTPP 가입을 신청한 국가는 중국(2021년 9월), 대만(2021년 9월), 에콰도르(2021년 12월), 코스타리카(2022년 8월), 우루과이(2022년 12월), 우크라이나(2023년 5월), 인도네시아(2024년 9월)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한국, 태국, 필리핀 등은 공식 가입 의향서를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가입 의사를 표명하였거나 검토 중인 국가들이다.

 

그러나 CPTPP에 신규 가입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CPTPP는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제공하고, 회원국 간 서비스 및 투자에 대해 거의 완전한 시장 개방을 규정하는 등, 협정 가입에 따르는 이해관계나 위험 부담이 높은 협정이다. 그런 만큼, 기존 CPTPP 회원국들은 신규 가입신청국에게 높은 수준의 가입기준을 충족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가입신청국의 자격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여 만장일치로 가입을 승인하도록 하고 있다. 신규 가입국이 협정을 효과적으로 이행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입 심사의 핵심 요소이다. 여기에 더하여 가입 승인에 지정학적 문제가 개입되고, 협정 사무국이 부재하는 등의 이유로 신규 가입국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원래 CPTPP 협정의 기원은 2006년 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가 참여하는 환태평양 전략경제동반자협정(TPSEP), 즉 태평양 4개국(P4) 간 협정이었다. 당초 P4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비공식적인 무역협정 논의를 시작했다. P4는 비록 처음에는 소규모 개방 경제를 가진 국가들 간의 작은 협정으로 출발하지만, 점차 21개 APEC 회원국을 아우르는 자유무역협정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협정에 신규 회원국 가입 조항(accession clause)을 포함시켰다. 

 

P4 협상은 2008년 금융 서비스와 투자에 관한 두 장(Chapter)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 때 미국이 논의가 진행 중인 챕터 차원의 협상에 참여할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의 협상 참여를 계기로 P4협상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협정의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되었다. 초기 논의는 P4협정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집중되었지만, 회원국들은 신속하게 새로운 FTA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만 협정의 내용적 범위는 P4협정과 유사했고, 규칙 및 부록들도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다. TPP 협상국도 확대되었다. 

 

TPP의 첫번째 협상은 2010년 호주, 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미국, 베트남 등 8개국에 의해 시작됐다. 이후 말레이시아, 캐나다, 멕시코, 일본이 추가되어 협상 참여국이 12개국으로 확대되었다. TPP 법률안은 2016년 1월에 완성되어 발표되었다.

 

그 후 각 참여국이 TPP협정에 대한 비준 절차를 거치는 동안 2017년 1월 20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에 의해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했다. 이에 나머지 11개 회원국들이 협정을 약간 수정하고 이름을 변경하여 2018년 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PTPP)을 발효시켰다.[2] CPTPP는 제30.4항의 TPP 가입 조항(30.4항)을 승계했지만 당초 TPP에 참여했던 APEC 회원국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부분(30.4.1.a)은 삭제되었다. CPTPP 제30.4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3

 

제30.4항(가입)

1. 이 협정은 다음 국가들에 열려 있다:

(a) APEC 회원인 국가 또는 별도의 관세영역

(b) 당사국들이 합의하는 기타 국가 또는 별도의 관세영역. 

가입 후보자는 당사국들과 합의한 조건에 의거하여 이 협정상의 의무를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각 당사국 및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 또는 별도의 관세영역의 적용 가능한 법적 절차에 따른 승인을 거쳐야 한다. 

  2. 국가 또는 별도의 관세영역은 수탁자에게 서면으로 요청을 제출하여 이 협정 가입을 신청할 수 있다. 

 

영국은 CPTPP에 포함된 이러한 가입 조항을 통해 2021년에 회원국 가입을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TPP 및 CPTPP 가입기준과 절차

 

CPTPP 이전의 TPP 협상 과정에서 신규 회원국 가입에 관한 비공식 규범이 채택되었다. 여기에는 가입신청국은 공식 수탁국인 뉴질랜드에 가입요청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CPTPP 제30.4항에 반영되었다. 

 

TPP 가입요청서를 제출한 가입신청국은 기존 TPP회원국들과 "양자 간 현안"(bilateral irritant)을 비공식적으로 논의하여야 했다. 다만 이러한 양자간 문제가 더 큰 협상그룹에서의 협상 이전에 해결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큰 그룹 협상과 병행하여 협상을 계속해도 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일부 회원국은 양자 간 문제가 최종 가입 승인까지 충분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최종 가입 승인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반면, 어떤 TPP 가입신청국들은 협상 전에 양자 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여야 한다면 단기적으로 합의가 완료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국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추가로, TPP가입에 관한 비공식 기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1)  기존 TPP 회원국들 전원이 협상 개시를 승인해야 가입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2)  신규 가입신청국은 이미 완결된 협정의 법률 문서에 대해 협상을 요청할 수는 없지만, 협상이 중인 모든 규칙에 대한 협상에는 참여할 수 있다.

3)  신규 가입신청국은 약속표(Schedules of commitments)를 작성하여야 하며, 관세 철폐의 속도와 범위 등에 대해 협상을 하여야 하고(모든 가입국들이 가입 발효 시 높은 수준의 관세 철폐 또는 인하를 약속하고, 합리적인 기간 내에 거의 모든 관세를 비교적 신속하게 철폐할 것을 약속하여야 함), 또한 서비스 및 투자에 대한 지속적인 제한 사항을 네거티브 리스트로 명시하고, 정부 조달에서 제외되는 특정 기관을 명시해야 한다.

4)  기존 회원국들도 가입신청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자신의 약속 이행 일정을 재고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 하에 캐나다와 멕시코는 2년 이상 협상이 진행된 후 2012년 10월에 TPP에 가입했고, 일본은 협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2013년 7월에 가입했다.

 

원래 TPP 협정문에 있던 가입 조항은 CPTPP의 최종 조항(Final Provisions) 장에서 간략한 조항(제30.4항)으로 정리되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CPTPP 제30.4항에 열거된 회원국 자격 기준은 당해 국가가 APEC 회원이거나 "당사자가 동의하는 다른 국가 또는 별도 관세 영역"이어야 한다는 것과, 협정상 의무를 준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CPTPP 회원국들은 이러한 조항들이 가입자격에 대한 최종 기준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회원국들은 CPTPP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CPTPP 위원회(CPTPP Commission)의 첫번째 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였고, 2019년 위원회 결정을 통해 CPTPP 가입기준을 공식 규칙으로 채택하였다. 위원회 결정의 부속서 제5조(Benchmarks: 기준)에서는 신규 회원국에 대한 가입 기준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5.1: 가입 희망국은 (a) CPTPP에 포함된 모든 기존 규칙을 준수할 방법을 제시해야 하며, (b) 상품, 서비스, 투자, 금융 서비스, 정부 조달, 국유기업 및 기업인의 임시 입국에 대해 최고 수준의 시장 접근을 제공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각 당사국에게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시장 접근성을 제공해야 하며, 이는 무역, 투자,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효율성, 경쟁, 개발을 촉진하는 동시에, 유치국과 당사국 간의 상호 이익이 되는 연계를 강화하는 균형 잡힌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5.2: CPTPP 원가입국들이 상품 및 서비스 무역과 투자에 대한 관세 및 기타 장벽을 철폐함으로써 합의한 포괄적 시장 접근성 약속의 목표는 가입 희망국들이 제시하는 약속의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4]

 

한편 CPTPP 가입절차는 영국과의 가입협상을 하면서 일부 변경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변경 사항은 가입 희망국의 가입 요청서 제출 이후 비공식 가입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설문 단계가 추가됐다는 것이다. 즉, 가입 희망국에게 기존 CPTPP 조항과 관련된 국내법, 규칙, 정책 및 절차에 대한 질문이 담긴 비공개 설문지를 보내고 해당국이 이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했다. 

 

가입 희망국이 작성한 설문에 답변은 모든 기존 회원국들에게 배포되며, 기존 회원국들은 설문지 답변에 대한 서면 질문이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가입 희망국은 질문에 서면으로 답변해야 한다. 이 절차와 관련하여, 서면 질문과 답변의 분량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질문과 답변을 얼마나 반복할 수 있는지는 명확치 않다.

 

다만, 가입 희망국은 가입협상이 완료되고 협정이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협정상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입 희망국은 가입 후 CPTPP 의무를 이행하는 일정을 회원국들에게 설명하고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재차 제출해야 한다.

 

CPTPP 가입협상의 실제 

 

CPTPP 가입은 흔히 당사국들과의 "협상"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협정문에 대한 협상이 행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가입 희망국은 이미 완결된 협정에 가입하는 것인 만큼, CPTPP 가입협상는 주로 신규 회원국이 CPTPP 상의 규칙과 요건을 어떻게 충족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데 집중된다. 

 

예를 든다면, CPTPP 가입 희망국은 국경 간 서비스 무역 및 투자와 관련한 자국의 시장개방 양허표를 제출하면서 개방 예외 조항(exceptions) 혹은 비준수 조치(non-conforming measures) 목록을 제출하여 가입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가입 희망국은 이러한 예외 조항들을 CPTPP 협정 부속서 II에 포함시키고자 할 것이고, 반면 기존 회원국들은 가입 희망국이 제시한 예외 조항 수를 줄이고, 예외 조항을 부속서 II가 아닌 부속서 I에 포함하도록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부속서 I에 포함된 예외 조항들은 향후 CPTPP 회원국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점진적 개방장치(ratchet mechanism)"가 적용되는 반면, 부속서 II는 향후 변경을 예정하지 않는 확정적 예외 조항들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CPTPP 가입협상의 핵심 대상은 가입 희망국의 협정 양허표에 포함될 내용과 그 구체적인 이행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CPTPP 가입협상은 협정 조건을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절차처럼 가입 희망국의 양허 조건을 협상하는 측면이 강하다. 물론 가입협상 당시 CPTPP 회원국들이 법률문서의 개정 협상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가입 희망국도 그 협상에 참여할 수 있다.

 

가입 희망국과 기존 회원국 간에 소위 ‘부속 합의서’ (side letters) 방식으로 특약 사항을 논의하는 경우에는 해당국들 간에 실제로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부속 합의서는 특정 회원국들 간에 CPTPP 법률조항에서 벗어난 예외 사항을 합의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부속 합의서는 대부분 양자간 성격을 띤다. 예컨대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체결한 와인 및 주류에 관한 부속 합의서와 같이, 두 회원국 간에 존재하는 FTA 규정이나 약속이 CPTPP 발효 이후에도 계속 적용된다는 점을 부속 합의서로 합의할 수 있다. 또한 특정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CPTPP의 특정 규정(예컨대 ISDS 규정)을 상호 적용하지 않기로 약속할 때 부속 합의서가 이용되기도 한다. 

 

이 밖에 특정 가입국에 대해 문화적 예외, 전자결제, 전자상거래 예외를 적용하고자 할 때 해당국과 모든 회원들 또는 대부분의 회원국들과 부속 합의서를 교환하기도 한다. 부속 합의서는 협정 적용에 약간의 유연성을 허용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일부 회원국들이 국내에서 협정 비준 절차를 수월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2023/2024년에 강화된 CPTPP 가입기준 – “오클랜드 원칙”

 

영국과의 CPTPP 가입협상은 2021년 6월 시작했으며, 거의 2년의 협상 끝에 영국은 2023년 7월 가입 의정서에 서명했다. CPTPP 회원국들은 영국과의 가입협상 기간 동안 다른 가입 희망국들의 지원자들의 가입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CPTPP 회원국들은 영국과의 가입협상을 CPTPP 가입기준과 절차를 추가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시험 사례로 취급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19년 CPTPP 위원회는 결정 부속서로 신규 가입 희망국을 심사하기 위한 기준을 정한 바 있다. CPTPP 회원국들은 영국과의 가입협상이 마무리된 2023년과 2024년에 이 CPTPP 가입기준을 강화하여 갱신된 기준을 발표했다. 갱신된 가입기준은 '오클랜드 원칙'(Auckland Principles)이라 불린다. 오클랜드 윈칙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즉, 첫째, 협정의 높은 기준을 충족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 둘째, 무역 약속을 지속적으로 이행한 실적이 있을 것, 셋째, 가입 개시 결정은 CPTPP 회원국 전원의 합의를 요함을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CPTPP 가입 기준의 강화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많은 가입 희망국들을 고려하여, 수준 높은 CPTPP 규범을 이행할 수 있는 국가를 가려내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현재 CPTPP 가입을 신청한 국가들 중에는 FTA 협상 또는 체결 경험이 부족하고 CPTPP와 같은 고도의 시장개방 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운 국가들이 있다. 더욱이 CPTPP에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특별 대우 조항이 없으며, 모든 회원국이 동일한 수준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다만 일부 규칙의 적용에 약간의 시간적 여유(최대 5년)를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오클랜드 원칙은 이처럼 다양한 가입 희망국들 중에서 어떤 국가를 우선적으로 선발하고 어떤 지원자를 선발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위 세가지 원칙에 의거하여 실제로 잠재적 회원국들을 걸러 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가입 희망국이 CPTPP의 높은 기준을 충족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요건과 관련하여, 협상이 실제로 진행되기 전까지는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어떤 국가도 협정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겠다고 공표하지는 않을 것이며 실제 제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들의 의도를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인 무역 약속을 준수한 이력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가입 희망국들이 이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지가 분명치 않다. 가입 희망국들이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무역협정을 체결한 상황에서 모든 협정을 전부 준수했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준수해야 준수했다고 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기준은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사실상 주관적인 평가를 요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기존 CPTPP 회원국들은 과연 입증가능한 무역협정 준수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CPTPP 내에서도 회원국들에 대한 기존 조항의 적용이 일관되지 않거나 아예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2018년에 발효된 CPTPP는 2024년 "3년차" 이행 검토 절차를 거쳐야 하나, 현재 CPTPP 회원국들은 예정된 장(chapter) 단위 검토를 지속적으로 실시하지 않고 있고, 관련 온라인 정보도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 조달 기준은 2년마다 업데이트해야 하지만, 어떤 CPTPP 회원국도 이를 업데이트한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현재 가입협상 개시에 회원국 전원의 합의를 요한다는 원칙은 부적합한 국가의 가입을 막는 중요한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WTO가 만장일치 원칙을 채택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고려할 때, CPTPP의 합의 원칙은 CPTPP 확대에 걸림돌이 될 소지가 있다.  

 

요컨대, 현재의 CPTPP 가입기준을 정하고 있는 오클랜드 원칙은 실제 적용에 있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여러 가입 희망국들의 가입 절차를 효과적으로 관리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CPTPP 확대를 위한 가입절차의 혁신 필요성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기존의 다자 무역 체제가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확실성 증가로 글로벌 투자는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CPTPP와 같은 고품질의 무역 협정이 원활하게 운영되고 확대될 수 있다면, 제한적이나마 다자 무역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플랫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CPTPP는 현재 회원국이 12개에 불과한 작은 협정으로 남아 있고, 신규 회원국을 영입하는데 난관이 많다. 신규 회원극의 가입조건은 까다롭고 가입절차는 복잡하다. 수년에 하나의 회원국을 가입시키는 느린 속도로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다자 무역질서를 유지하는 플랫폼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CPTPP 회원국들은 최대한 많은 신규 참여국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입절차를 혁신하여야 하고, 가능하다면 늘어나는 회원국 수만큼 협정의 이행과 협상을 관리할 사무국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협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자유 무역과 시장 개방을 지지해 온 주요국들이 CPTPP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과감한 조치가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감안하여, 가입 희망국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동시에 CPTPP 확대 절차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5] 이는 일종의 집단 가입방식으로, 가입 희망국들은 특정 날짜에 CPTPP 회원국들로부터 향후 가입절차, 일정, 요구 사항에 대한 공통 브리핑을 받고, 그 후 주요 분야(상품, 서비스/투자, 정부 조달, 기업 진출, 경쟁/국영기업)별 CPTPP 협상팀과 개별적으로 만나 추가 협상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협상을 계속 진행할 준비가 된 가입 희망국은 후속 협상에 초대될 수 있고, 아직 협상을 진행할 준비가 되지 않은 국가는 협상 속도를 늦추거나, 협상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집단 가입 방식에서는 가입 희망국 그룹은 상품, 서비스/투자, 국영기업, 정부 조달 등 부문별 협상 진행 상황을 CPTPP 위원회에 제출하고, 위원회는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당사국과의 협상을 중단 또는 연기하도록 권고할 수 있으며, 협상 결과가 만족스런 국가들에 대해서는 최종 가입 절차를 시작하는 실무그룹에 포함, 후속 협상을 이어갈 수 있다. 이는 CPTPP 회원국들이 종전의 개별 국가별 맞춤형 가입절차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CPTPP 회원국의 신속한 확대를 수용할 의지가 있다면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국내적으로 CPTPP가 요구하는 개방 수준에 맞추어 농산물 시장 등을 개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가입 희망국들의 다양한 경제 발전도나 정치 경제 체제,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이 안보상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는지, 경제적 실익이 얼마나 큰지 등도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면 CPTPP 가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에서 본 바와 같은 가입절차상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신속하게 가입을 실현할 수 있는 효율적인 가입방안을 CPTPP 회원국들에게 적극 제시하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Endnotes

 

[1] Deborah Elms, “Joining the CPTPP: A better way to streamline the process”, Hinrich Foundation (2024. 11) 참조.

[2]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TPP 조항들 중에서 단22개 조항만 수정되었다. 

[3] 제30.4항 원문은 다음과 같다,

Accession

1.  The Agreement is open to accession by: 

(a)  Any State or separate customs territory that is a member of APEC; and

(b)  Any other State or separate customs territory as the Parties may agree. 

The candidate must be prepared to comply with the obligations in the Agreement, subject to such terms and conditions as may be agreed between the candidate and the Parties, and following approval by the applicable legal procedures of each Party and the acceding State or customs territory. 

       2.  A State or separate customs territory may seek to accede by submitting a request in writing to the Depositary.

[4] 영문 원문은 다음과 같다.

5.1: Aspirant economies must: (a) demonstrate the means by which they will comply with all the existing rules contained in the CPTPP; and (b) undertake to deliver the highest standard of market access offers on goods, services, investment, financial services, government procurement, State-owned enterprises and temporary entry for business persons. These must deliver commercially meaningful market access for each Party in a well-balanced outcome that strengthens the mutually-beneficial linkages among the aspirant economy and the Parties, while boosting trade, investment and economic growth, and promoting efficiency, competition and development.

5.2: The objective of comprehensive market access commitments agreed by CPTPP original Signatories through the elimination of tariffs and other barriers to goods and services trade and investment should guide the level of commitments offered by aspirant economies.

[5] Deborah Elms, “Joining the CPTPP: A better way to streamline the process”, Hinrich Foundation (2024. 11) 참조. Deborah Elms는 가입 희망국들을 하나의 대화그룹(Dialogue Group)으로 묶어 정해진 일정에 따라 가입 협상을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