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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Trade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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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WTO 개도국 특권 포기

2025-10-29 12:20

    

김 두 식 (외국인투자 옴부즈만 · 변호사)                                                                                          2025년 10월 29일


 


지난 10월 초 중국은 WTO에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특별 혜택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동안 인도, 남아공 등 거대 신흥경제국들은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며 WTO다자가 협정과 복수간 협정의 협상을 블로킹함으로써 WTO기능 약화에 기여해 왔다. 이번 중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이 이러한 거대 ‘개도국’들의 태도 변화를 초래할지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은 무역 다자주의를 표방해온 중국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악화된 WTO 협상 기능의 회복에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개도국 특권 포기 배경과 의미[1]

 

WTO는 현재 166개 회원국이 자국 스스로 선진국인지 개발도상국인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WTO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분류하는 기준을 정한 바 없기 때문이다. 다만 WTO 회원국의 세번째 범주인 ‘최빈개도국’(LDC)은 유엔의 분류에 따라 지정된다.

 

지금까지 WTO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이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이라고 분류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명목 GDP 기준 세계 2위와 4위인 중국과 인도가 포함된다. (구매력 평가 기준 GDP 기준으로는 중국이 세계 1위, 인도가 세계 3위다.) WTO 가입을 위해 대기 중인 22개국들도 스스로를 모두 개발도상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WTO 규정에 따르면, 국가의 발전 수준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 수준이 다르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특별 및 차등 대우"(S&DT)라는 무역 특권이 부여된다. 예컨대, 개발도상국은 선진국과 동일한 수준의 관세 인하 또는 보조금 감축을 시행할 의무가 없다. 농업 보조금의 경우, 개발도상국은 생산량의 10%에 해당하는 농업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는 반면, 선진국은 5%까지 농업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러한 개도국에 대한 특별 및 차등 대우가 개발도상국들의 기득권으로 인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특히 2001년 WTO 가입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계속 주장하는 데 대해 반발이 컸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세계적 영향력과 경쟁력을 가진 국가들이 이러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불만을 제기해 왔다. 중국의 이번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은 선진국들의 오랜 불만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왜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을까?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1인당 소득은 여전히 13,300달러에 불과하여 86,000달러인 미국 등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낮은 상황에서, 중국의 개도국 특권 포기는 어느 정도의 희생을 수반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개도국 특권을 포기하더라도 현재로서는 비교적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WTO의 농업 및 어업을 비롯한 다자간 무역 협상은 빠르게 진전되지 않고 있고, 최근 몇몇 협상에서 중국은 이미 개도국 특권을 포기한 바 있다. 

 

또한 세계 무역체제의 불확실성 증가와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흔들리는 세계에서 다자간 무역질서를 주도하려는 중국으로서는 이번에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고 선진국 의무 이행 의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중국의 지도력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WTO 협상 기능 약화의 원인

 

지금 WTO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빈사 상태에 빠진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미국이 주도한 WTO 분쟁해결절차 기능 정지, 그리고 새로운 통상 이슈에 대한 WTO 차원의 협상 기능 약화가 그것이다. WTO의 협상기능이 약화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신흥 경제대국들로 부상한 개도국들의 무역협상 거부이다. 

 

WTO 협정에서 개도국에 대한 특별 및 차등 대우 조항은 모든 개발도상국 회원국들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이러한 특혜 조항은 농산물 수입 쿼터를 포함한 모든 WTO 협정에 명시되어 있다. 개도국들에게는 부여된 특권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있다.


•  협정 및 약속 이행 기간 연장

•  이들 국가의 무역 기회 확대 조치

•  모든 WTO 회원국이 개발도상국의 무역 이익을 보호하도록 요구하는 조항

•  개발도상국의 WTO 업무 수행, 분쟁 처리 및 기술표준 이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 지원

 

그 동안 인도, 남아공, 인도네시아 등 거대 신흥경제국들은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며 WTO 다자간 협정과 복수간 협정의 협상을 블로킹함으로써 WTO의 협상기능 약화에 기여해 왔다. 이들 핵심 개발도상국 그룹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개도국 특별 대우를 잃을까 두려워 새로운 무역 분야에 대한 다자간 및 복수간 협정의 협상을 좌절시키거나 지연시켜 왔다. 

 

특히 인도는 그 동안 자국의 빈곤 문제, 역량 부족, 인프라 격차, 디지털 격차, 불균형 성장과 같은 지속적인 개발 과제를 언급하며 개도국 대우를 적극적으로 옹호해 왔다. 인도는 더 나아가 166개 WTO 회원국 전체를 포괄하는 무역 장벽 완화 규범 제안에 반대해 왔을 뿐 아니라, 인도가 가입할 의사가 없는 일부 회원국들 간의 복수간 협정에도 반대해 왔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복수간 협정이 WTO내에서 본질상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신흥 경제대국들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주장하며 이에 따르는 수많은 특혜를 누리려 하는 한, 개도국 특권의 남용을 둘러싼 WTO 회원국들 간의 분열적 양상이 해소되기 어렵고 WTO의 협상기능이 회복되기 어렵다. 그 세계 무역 협정을 체결하고 운영하는 WTO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의 영향

 

이번 중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이 당장 거대 ‘개도국’들의 태도 변화를 초래할지는 불확실하다. 인도는 2047년까지 선진국이 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브라질은 2019년에 선진국 지위를 선언하겠다고 했지만, 2024년에는 선진국 지위를 선언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그 동안 WTO 협상을 지연시키기 위해 협력해 온 인도, 남아공,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주요 신흥 경제국들의 전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비록 자국 경제가 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국내 개발 필요성이 있고 따라서 WTO 규칙에서의 예외 내지 정책적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들 국가들은 지금까지는 이러한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을 언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월 이후 이들은 더 이상 중국에 기대기 어렵게 되었다.

 

중국의 개도국 특권 포기 결정은 아직 다자 무역협상에서 실질적인 양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다자간 무역 체제 질서를 주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다른 주요 신흥국들이 중국의 선례를 따른다면 WTO 개혁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WTO 회원국들 간의 신뢰가 회복되고 악화된 WTO 협상 기능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주요 신흥 경제국들이 중국처럼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결정을 할 조짐은 아직 없다.

 

 

 

Endnotes

  

[1] Hinrich foundation의 2025. 10. 21.자 Editorial “China relinquishes WTO privileges. Time or others to do the same?”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