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2월 4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지난 80년간 미국이 주도해 온 규칙 기반(rule-based) 국제 질서를 배제하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바탕을 둔 외교 안보 전략을 공식화했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강대국들의 힘에 의해 국제관계가 규정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트럼프는 중국과 러시아가 가진 글로벌 영향력을 인정하면서 극단적 대립보다는 타협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양국 간 '경제적 불균형의 재조정'을, 러시아와는 '관계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남미를 포함한 서반구(Western Hemisphere)에 관한 한, 이 지역이 미국의 독점적 세력권임을 선언하고, 중국의 남미 진출을 철저히 배제하는 이른바 트럼프식 먼로주의(Trump Corollary to the Monroe Doctrine)를 천명했다. 한편 동맹국들을 대우하기 보다 오히려 부담을 지우는 트럼프의 성향은 이번 전략문서에서 재확인되었다. 특히 유럽에 대해 미국은 단순히 방위비를 더 내라는 '비용 분담(Burden-sharing)'을 넘어, 유럽이 스스로를 전적으로 책임지라는 '부담 전가(Burden-shifting)'를 요구한다. 아시아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힘에 의한 ‘전쟁억제’(deterrence)를 위해 한국과 일본에게 더 많은 방위비 분담과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2025국가안보전략에는 미국내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이 전략문서가 향후 미국의 모든 대내외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트럼프 2기 미국의 세계전략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에 담긴 몇가지 핵심 내용을 살펴본다. |
강대국들 간 ‘경쟁’에서 ‘타협’으로 2025년 국가안보전략에 나타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세계전략은 그 직전의 두 정부(트럼프 1기 및 바이든 정부)가 내세웠던 '강대국 간 경쟁' 혹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대립적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고 있다. 트럼프 1기 및 바이든 행정부는 모두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는 세계를 형성"하려는 위협세력으로 규정했었다.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추격자적 도전세력(pacing challenge)"으로, 러시아는 "전복과 침략"을 일삼는 "급박한 위협"으로 묘사되었다.[1] 하지만 이번 국가안보전략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경쟁'이라는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그 대신 러시아에 대해서는 "관계 관리"를 당면 과제로, 중국과는 “경제적 관계 재정립"을 기본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는 등, 상당히 타협적이고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트럼프의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이번 국가안보전략에서 트럼프는, 국제관계에서는 "더 크고 부유하며 강한 국가들이 행사하는 과도한 영향력"(outsized influence of larger, richer, and stronger nations)이 "영원한 진리"라고 하면서, 미국은 “세계 지배"라는 "불운한 개념”을 거부하고 "세계 및 지역적 세력 균형"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미국이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전략적 경쟁보다는 강대국들의 '세력권’(spheres of influence)을 인정하는 기조로 나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트럼프의 세계관은 지난 10년 동안 미국 외교 정책을 이끌어온 미국내 주류적 철학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이 약화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중국 등의 부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었고, 냉전시대와 달리 오늘날 강대국 간의 경쟁이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얽혀 있어, 미국이 종전의 세계 지배 전략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타협적 태도는 글로벌 파워 경쟁에서 미국이 처한 현실을 솔직하게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설사 트럼프 시대가 끝나더라도, 미국이 바이든 시대에 취한 강압적 봉쇄 전략, 즉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이분법이나 중국 및 러시아와의 이념적 대립에 기초한 극단적 대결 전략으로 회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와 유럽에 대한 미국의 상반된 시각 이와 같이 미국의 강대국 정책이 큰 전환을 맞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와 유럽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 2025 국가안보전략에 언급된 유럽과 러시아 관련 내용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안정 추구, ▲NATO 확장 중단, ▲유럽 안보에서 미국의 역할 축소, ▲유럽연합에 대한 비판과 유럽 내 우파 지원 시사,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속한 해결 등으로 요약된다. 이 중 ‘러시아와 전략적 안정’ 구축과 ‘NATO확장 중단’이 미국의 대(對) 러시아-유럽 전략의 핵심이다. 이런 전략은 이미 작년 11월 미국이 러시아에 제시한 28개 항의 우크라이나 평화안 및 이후 수정안에 반영되어 있었다. 이 평화안은 ▲우크라이나 평화, ▲유럽 안보, ▲미-러 관계, ▲전후 재건 등 4개 분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그 중에서 러시아에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대목은 “나토 확장을 중지”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불허”한다는 부분일 것이다. 이는 사실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어 내고자 했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2] 반면, 트럼프는 유럽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2025 국가안보전략에서 그는, ‘유럽연합’이라는 초국가적 기구에 의해 유럽 각국의 주권이 제약을 받고 있으며, 유럽의 글로벌리즘과 대규모 이민 허용 등으로 유럽이 “문명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유럽을 비판한다. 나아가 유럽내 우파세력 지원을 통해 “현재의 유럽 궤도에 대한 저항 세력을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헝가리의 집권당을 비롯해, 독일의 독일대안당(AfD),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등 주요 우파 정당들이 대러 제재 완화나 관계 정상화를 주장해 왔거나, 각국의 “주권이 유럽연합과 NATO에 의해 제약”되는 현재의 구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런 극우 정당들은 이번 트럼프의 우파 지원 시사 발언으로 크게 고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럽에 비판적이고 러시아에 우호적인 트럼프의 태도는, 유럽이 ‘백인 기독교 문명’을 상실했고 러시아가 오히려 보수 가치를 수호하고 있다고 보는 MAGA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은 미국 내 MAGA사상을 대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월 초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도 NATO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바이든 전 대통령의 이른바 “NATO 문호 개방 정책(open door policy)”을 비판하며, “그렇게 되면 러시아의 문 앞에 누군가가 있게 되는 것인데, 나는 그들(러시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시도가 러시아의 안보 불안을 자극했고,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밴스 부통령은 작년 2월 뮌헨 안보회의 연설에서 “유럽이 근본적 가치로부터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낙태시설 인근 기도를 금지하는 이른바 ‘버퍼존 법’ 등 유럽 리버럴리즘의 과잉 규제와 우파 정당에 대한 “탄압”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3] 사실 미국 보수층에서는 오래전부터 러시아에 대한 시각 변화가 진행되어 왔다. 작년 3월 CBS News/YouGov가 실시한 대러 인식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 지지자 중 37%가 러시아를 ‘우호적(friendly)’으로, 4%는 ‘동지(ally)’로 인식한다고 응답해 총 41%가 러시아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보였다. 러시아는 2010년대 푸틴 정부 3기를 전후해 스스로를 ‘보수 가치의 수호자’이자 ‘기독교 국가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로, 서방의 글로벌리즘과 자유주의에 맞서는 “문명 전쟁”의 핵심 행위자로 표방해 왔다. 따라서 2기 트럼프가 내세운 대 러시아 시각과 푸틴의 담론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4] 이와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종료되면 미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급속히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미·러 관계 개선은 한-러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간 한-러 관계는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사건 전후로 악화된 미·러 관계의 영향으로 위축되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한·러 관계는 더욱 경색되었고, 북·러 동맹의 형성이라는 한반도 안보 구도의 중대한 변화로 이어졌다. 이처럼 한·러 간 경색 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푸틴은 여러 차례 한국과의 관계 회복을 희망하는 발언을 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고 미-러 관계가 개선되면 한-러 관계도 급속히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반구 지배를 향한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 2025년 국가안보전략에서 트럼프는 서반구에 대한 미국의 통제와 지배 강화를 선언했다. 이는 남미를 포함한 서반구에 대해 미국이 신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서반구 지배 전략을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이라고 부른다. 1823년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 수정안(Trump Corollary)은 작년 12월 2일 발표됐다.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 수정안의 핵심은 한마디로 "외국이나 세계기구가 아닌 미국 국민이 언제나 서반구에서의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 (That the American people—not foreign nations nor globalist institutions—will always control their own destiny in our hemisphere)는 것이다.[5]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은 서반구에 존재하는 몇가지 위협을 상정하고, 이러한 위협들로부터 미국의 주권과 안보, 안전(American sovereignty, security and safety)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힘. 특히 군사력 행사를 불사한다는 형태로 적용된다. 미국이 말하는 서반구에서의 위협은 이민 유입, 마약 등 범죄, 그리고 중국의 영향력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우선 과제는 사람과 마약의 국경 통과를 차단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국가안보전략에서 "우리는 이민 통제, 마약 유통 차단, 육상 및 해상 안정과 안보 강화를 위해 서반구의 기존 우방국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여기에는 "서반구의 긴급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전세계 군사력 배치 재조정"과 "국경을 확보하고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치명적인 무력 사용"이 포함된다. 트럼프는 또한 중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남미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 이번 국가안보전략에서 트럼프는, "이 지역에서 또는 이 지역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모든 미국 관계자는 외부의 해로운 영향력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파트너 국가에 압력을 가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미주 지역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이 금년 1월 2일 밤 ‘확고한 결의 작전’(Operation Absolute Resolve)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전격적으로 체포한 것은 바로 마약 카르텔 소탕과 중국의 영향력 제거를 노린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의 실행이라 할 수 있다. 대(對) 중국 및 아시아 정책 트럼프는 서반구 다음으로 아시아(인도-태평양)를 미국 외교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5 국가안보전략에서 트럼프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여전히 "핵심적인 경제 및 지정학적 격전지"로 남을 것이며, "미국 국내 경제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서의 경쟁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대(對) 아시아 정책은 오바마의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트럼프 1기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바이든의 인도-태평양 전략 등과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핵심이다. 미국의 대중 전략은 한마디로 ‘힘에 의한 평화(peace from strength)’ 원칙에 따라 군사적 충돌 방지를 추구하되, 경제적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 시절 중국과의 치열한 대립과 봉쇄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정책 기조는 더이상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대신 중국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이 전환되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 변화는 종전 중국에 대한 압박과 봉쇄 전략의 현실적 한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중국은 지금까지 미국과의 경제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 시절 미국이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Small yard, high fence) 정책으로 중국의 봉쇄하려던 노력은 역효과를 낳았고, 트럼프 2기 들어 중국과 벌인 관세전쟁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로 인해 좌절되었다. 미국은 이제 좋든 싫든 중국의 존재와 위상을 인정하고 중국과 공조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해서는 단호한 억제 의지를 유지하고 있다. 2025 국가안보전략에서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유지함으로써 대만을 둘러싼 분쟁을 억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대만 해협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하고, 남중국해의 항행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의 지정학적 위치와 미국의 국익 측면에서 대만 및 남중국해 방어의 명분을 찾고 있다. 즉. 대만은 일본 규슈,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보르네오 북부를 있는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의 핵심 고리이자 제2도련선(Second Island Chain)의 관문이며,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나누는 분기점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중국해는 전세계 해운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지역으로 미국 경제에 중요한 이해가 걸려 있다고 본다. 그런데 미국은 제1도련선의 방어를 혼자 감당할 수 없다며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의 집단방어(collective defense)를 촉구한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일본과 한국 같은 국가들에게 더 많은 방위비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국가안보전략에서는 인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미국과 인도의 관계가 지난 20년 동안 최악의 수준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미국)는 인도와의 상업적(그리고 기타) 관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인도가 호주, 일본, 미국과의 4자 협력("쿼드")을 지속하는 것을 포함, 인도-태평양 안보에 기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동맹에 대한 미국의 시각 동맹국들을 대우하기보다 동맹국들에게 경제적, 군사적 부담을 지우는 트럼프의 성향은 이번 2025 국가안보전략에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특히 유럽에 대해서는 단순히 방위비를 더 내라는 '비용 분담(Burden-sharing)'을 넘어, 유럽이 스스로를 전적으로 책임지라는 '부담 전가(Burden-shifting)'를 요구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대(對) 중국 관계에서 ‘힘에 의한 전쟁억제’(deterrence) 원칙을 강조하며 한국과 일본에게 더 많은 방위비 분담과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동맹국들에게 부담 분담 또는 부담 전가를 요구하는 대가로 미국이 그들에게 안전 보장을 제공할 것인가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원래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유지되어 온 것은 동맹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동맹에 안전 보장을 제공한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서반구를 미국의 국익이 걸린 핵심 지역으로 보고 이 지역 지배를 위해 군사력의 재배치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동맹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의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 방위 의지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주장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를 의미하며, 미국의 ‘국익’에는 동맹국의 국익이나 자유민주주의 수호 같은 보편적 가치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주창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대서양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경쟁국들과 군사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미국에 해로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제 미국은 미국의 이익만을 위해 미국 중심의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에게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는 것도 동맹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해가 걸린 제1도련선의 방어 책임을 분담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이 적대세력으로부터 침공을 당할 경우 ‘미국 우선주의’가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미국이 동맹을 위해 피를 흘릴 것인지, 아니면 이제 미국은 나서지 않을 테니 각 동맹국은 스스로 자신을 지키라고 나올지-- 이번 2025 국가안보전략은 이런 근본적 질문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무시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 트럼프의 2025 국가안보전략에서 ‘규칙 기반(rule-based) 국제질서’는 사실상 종언(終焉)을 고하고 있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란 국가 간 조약이나 협정 등으로 형성된 국제법 규범과 제도를 통해 국가 간 상호작용을 규율하는 국제질서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형성된 국제체제로서, 유엔 및 산하기구,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유지된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경제의 번영을 가져온 자유무역 시스템도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로 결정되며 국가 관계를 거래(transaction)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관계에 규칙보다는 힘이 앞선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추구해온 세계화(Globalism)와 자유무역이 미국의 중산층과 산업기반을 무너뜨렸다는 피해의식도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지탱하는 국제기구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한다. 그는 반미적인 국제기구나 개별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초국가주의적 국제기구들에 의해 미국의 정책이 통제되어 왔다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 트럼프는 2025 국가안보전략에서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전면 정하고 ‘국가 우월주의’(Primacy of nations)를 지지한다. 트럼프는 “세계에서 가장 근원적인 정치 단위는 ‘국가’(nation-state)이며 각국은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고 각자의 주권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최일선에 내세울 것이니, 다른 나라들도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행동하라고 권고한다. 동시에 초국가적 국제기구들의 주권 침탈을 배격할 것이며 이들을 개혁할 것임을 공언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초 유엔 산하기구 31곳과 기타 국제기구 35곳에서 탈퇴한다는 문서에 서명했고, 유럽연합(European Union)에 대해서는 개별 회원국들의 정치적 자유와 주권을 해하는 기구라고 비난하고 있다. 2025 국가안보전략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반(反) 국제기구 정책으로 인해 WTO와 유엔의 입지도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트럼프식 ‘거래주의(Transactionalism)’ 내지 '비즈니스 외교’도 규칙 기반 국제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약소국의 보호막이 되어온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트럼프의 거래적 외교행태로 그 작동을 멈추었다. 그 결과 트럼프가 말한 “강대국의 과도한 영향력"(outsized influence of larger, richer, and stronger nations)이 국제관계를 결정하는 현실이 도래하고 있다. 실제 일본과 한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요구는 힘의 불균형을 이용한 착취(extortion)'에 가깝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규칙 기반 국제질서’ 무시는 그가 국가안보전략에서 펼치는 여러 정책들 간 모순과 자가당착을 낳기도 한다. 예컨대 2025 국가안보전략은 “기본권 및 자유의 보호”(Protection of Core Rights and Liberties)라는 장에서, 언론의 자유(rights of free speech), 종교와 양심의 자유(freedom of religion and of conscience), 정부 선택의 자유(right to choose and steer our common government)를 하나님이 부여한 자연권(God-given natural rights)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미국 정부기관 뿐 아니라 다른 자유진영 동맹국들도 이러한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 정부가 이런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미국아 이에 개입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가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각국은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갑자기 인류 보편의 자연권을 내세우며 다른 나라 정부에 개입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번 국가안보전략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대만을 포함한 제1도련선을 방어하는 데 동맹국들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한, 왜 동맹국들이 제1도련선 방어에 참여하고 방위비 부담을 늘려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다른 동맹국들이 제1도련선 방어에 참여하기로 한다면, 이는 공해에서의 항행의 자유라는 국제법 원칙을 수호해야 한다는 명분과,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한, 동맹국들에게 집단방어 참여를 요구할 명분이 약할 수밖에 없다. Endnote [1] 2022. 10. 12 바이든 대통령, National Security Strategy [2] 이태림, “MAGA의 대러 인식과 미-러 관계의 재편 가능성, 그리고 한반도”,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IFES Brief 2025-30, 2025.12. 26 [3] Ibid [4] Ibid [5] 2025. 12. 2. White House, America 250: Presidential Message on the Anniversary of the Monroe Doct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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